The Hours Breathe
스무평의 나의 작은 세상. 눈을 감고도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나의 머그에 커피를 내리고 원하는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할 수 있는 세상. 그 세상에 낯설고도 신기로운 물건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. 열달동안 나라는 존재와 일체가 되어 자라온 두 작은 생명체들이 탯줄을 끊고 나오면서 이 새로운 물건들과 현상들을 내 세상에 내놓고 있다.
품에 안고 있는 아이들이 닳아 사라질까봐 나는 그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 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. 솜털같은 아이의 속눈썹을 너무 오래 바라보면 아프진 않을까, 말랑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을 쥐고 있으면 스스륵 내 손안에서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.
커피잔 대신 유축기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, 한 새벽 와인 대신 유축된 모유가 식탁에 놓이고, 오랫동안 들고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던 어른들의 책 대신 육아서적과 그림책에서 나는 삶을 배우고 있었다. 카메라는 매순간 자라나는 아이들의 사진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. 아이들의 소리, 아이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아이들의 먹거리와 아이들의 놀잇감이 가득한 아이들의 삶 속에서 쉼없이 달리다가 모든 것이 멈춰지고 진공상태가 되는 듯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내 주위 풍경이 정막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순간이 있다.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정물들이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줌의 햇살을 받아 정막 속에서 누가 들을 새라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 자리에 깃털처럼 가볍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. 그 정물들은 나에게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냈다. 잠시 멈추라고. 멈추어 숨을 고르라고.
아이들이 잠에 들면 나는 그 정물들과 만난다. 낮잠의 짧은 시간일 때도 있고, 밤잠의 긴 시간이 주어질 때도 있다. 그 정물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. 때로는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마루가 되고, 때로는 아가의 숨소리만큼의 바람결이 느껴진 창가가 되기도 한다. 아이들이 마지막 남은 분유를 비워냈다. 수개월 분유를 주던 그 자리, 소파위에서 분유병과 작별인사를 한다. 아이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젓먹던 힘까지 더해 떼어낸 종이테이프가 둘러져 새생명을 얻은 자동차 장난감이 종이 고속도로 위 갓길에서 나와 함께 멈춰진다.
크고 작은 이 정물들에게 내가 떠날 수 없는 이 작은 집, 작은 세상, 별것 없지만 없는 것이 없는 나의 세상에서 가장 알맞은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. 그리고 가장 알맞은 빛을 기다린다. 그 빛이 아이들 낮잠 시간이 찾아오는 것은 큰 행운이다. 모두 잠든 밤 내 손이 겨우 보일만큼의 스탠드 불빛에 정물을 바라보기도 한다. 조각난 퍼즐을 끼워 맞추듯이 쪼개진 채로 오랫동안 천천히 만들어지는 정물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에게 명상이며 치유이다. 그 새로운 삶과 생명을 받아들이는 다리이며 이해하는 장치이다.
내 삶에 와주어 고맙다. 인사한다.
민혜령
2024